뭐랄까. 아직 채 눈도 뜨지 못한 새끼 쥐 한 마리를 들판 한가운데 던져놓은 느낌이었다. 첫아이를 어린이집에 처음 보내던 날의 느낌은 그토록 마음속에 또렷이 도드라져 있다. 녀석을 들여보내고 돌아서는 순간, 들고양이 한 마리가 녀석을 한입에 꿀꺽 잡아 삼킬지도 모른다는 걱정과 불안…. 녀석을 인솔해 들어간 담임선생님의 인상조차도 당시에는 굶주린 들고양이보다도 사납게 느껴졌다.
내가 그러한 불안과 걱정에 휩싸일 줄은 꿈에도 알지 못했다. 녀석을 낳고 기르면서 나와 아내는 일관되게 큰 지침 하나를 품고 육아를 해왔다. 세상은 누구도 아닌 녀석 스스로 돌파해야 할 벽이고, 부모는 그저 곁에서 라쿠카라차, 노래하며 응원수술 정도 착착 흔들어 보이며 격려나 해주면 그만이라고 여겨왔던 우리였다. 그러니 녀석이 부모의 품을 떠나 세상으로 한 발 내딛는 그 순간, 어쩌면 나는 불안과 염려 대신에 덤덤함 내지는 적당한 기대감으로 녀석을 가볍게 들판으로 떠다밀어야 했을지 모른다. 사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엄마, 아빠와 떨어지지 않으려고 울고 보챌 것이 분명하다는 우리의 예상을 뒤엎고 녀석은 뒤도 안 돌아본 채 어린이집 안으로 뛰어들어갔으니까.
그 정도의 적극성이라면 어린이집은 걱정할 일 없는 녀석의 세상이겠다 싶었다. 그런데 그게 또 아니었다.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고 얼마 뒤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간혹 물건을 집어던지는 버릇이 있던 녀석이 결국 친구에게 장난감 블록을 던져 상처를 냈던 것이다. 이후로도 친구를 밀어 뜨리거나 친구의 장난감을 빼앗는 등 녀석은 돌발적이고 비사회적인 행동으로 처벌(?)하기도 애매한 물의를 빚어왔다. 아무것도 모르는 세 살 아이가 저지른 아주 작은 물의지만, 그런 문제를 접할 때마다 부모 입장인 나는 심장이 타 들어갔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그게 다 괜한 걱정이었지 싶다. 어린이집이라는 낯선 울타리 안에 던져져 이제 막 ‘관계’의 방식을 터득해가는 녀석에게 그러한 행동들은 차분히 타이르는 정도로 넘어가도 될 일이었다. 괜히 내 불안함 때문에 녀석을 나무라고 혼냈던 일이 여전히 미안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결국 삶이란 적응의 문제가 아닐까. 수많은 관계와 상황 속에서 스스로 적응하는 과정을 통해 사회적 존재로 자라는 것 아닐까. 녀석은 올해로 어느덧 다섯 살이 됐다. 말도 어수룩했던 세 살짜리 아이는 작은 사회 안에서 또래의 구성원들과 함께 뛰고 먹고 부딪히면서 이제는 좀 더 인간적이고 사회적인 존재로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처음에 우리 부부가 가졌던 걱정과는 달리 녀석은 스스로 그 사회에 천천히 적응하고 진화해왔던 것이다.
“아빠, 나 사랑해요?”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녀석이 불쑥 나에게 묻는다. 사랑한다고 대답하자 녀석이 “나 사랑하면 초콜릿 하나 주세요!” 하고 말한다. “요 쬐깐한 녀석이 아빠를 조종해?” 녀석의 머리를 슬쩍 쥐어박는 시늉을 하며 웃는다. 벌써 이렇게 컸구나, 하는 대견함이 마음 한곳을 따뜻하게 덮는다.
녀석은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더 진화해나갈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부모라는 이 좁아터진 둥지를 떠나 넓디넓은 창공과 들판으로 날아갈 것이다. 나나 아내가 그러한 녀석을 위해 해야 할 일이라곤 그저 응원수술이나 흔들어주며 라쿠카라차, 격려하고 응원하는 게 전부일 것이다.
초콜릿 하나를 다 먹은 녀석이 다시 나를 부른다.
“아빠, 나 많이 사랑해요? 많이 사랑하면 하나 더 주세요!”
김효동
우리 아이들의 세상은 늘 공정하고 정의롭기를 바라는 글쟁이 아빠. 충북 충주에서 다섯 살 아들, 그리고 이제 막 뒤집기를 시작한 4개월 된 아들과 살고 있다.
글 김효동 에디터 박은아 포토그래퍼 강봉형 모델 전서준 의상 협찬 키즈아미란도셀, 리틀그라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