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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기다리는 노력

킨더리베 2016-10-04 11:52:36 조회수 1,024

서효인  에디터 한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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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아주 잘하는 아이와 말을 별로 못하는 아이와 함께 살고 있다. 큰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심장 쪽에 문제가 있어 치료와 수술이 필요했다. 다행히 모든 게 성공적이었지만 어떤 의료적 행위도 아이가 다운증후군으로 태어났다는 사실만은 바꿀 수 없었다. 나는 그것을 받아들여야 했다.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아이는 내 곁에 있었고, 아이가 주는 행복감은 이전에 경험했던 모든 행복감보다 컸다. 둘째는 평범하게 태어났다. 연년생이다. 가까운 터울로 형제를 낳으면 서로 최대한 오랜 시간 함께 있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아직은 자기밖에 모르는 다소 이기적이고 천진한 아이들이기에 서로를 위하고 배려하는 자매의 모습을 보여주진 않지만, 시간은 그 둘의 어깨동무를 더욱 굳건하게 하리라 기대하고 있다.

첫아이는 대부분의 다운증후군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의사소통에 애를 먹고 있다. ‘기다려주면 결국 해낸다’는 위대한 명제를 머리로는 잘 이해하고 있으나 마음은 그게 쉽지가 않다. 엄마나 아빠라는 단어조차 목 끝에 가시가 걸린 듯 음성으로 뱉지 못하는 아이를 보며 조바심을 감추기는 참으로 어렵다. 언어치료와 놀이치료를 병행한 지 1년이 다 돼 가는데, 눈에 띄게 말이 늘지는 않은 것 같다.
전문가의 치료도 좋지만 결국 집에서 부모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언어 발달의 속도를 조금은 당길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게 또 어려운 일이다. 집에는 엄마든 아빠든 언니에게 전적으로 빼앗길 수 없다는 아이다운 의지를 불태우는 또 다른 생명체가 산다. 둘째는 애교도 많고 울음도 많고 말도 많다. 자기 속도에 따른 과묵함을 택한 언니와는 달리 쉴 새 없이 조잘조잘 무언가 발화한다. 처음에는 엄마, 아빠였다. 다음으로 물, 맘마를 말하더니 포도, 사과에서 멍멍이, 야옹이, 사자, 뱀까지 확장됐다. 어디서 배웠는지 동요를 처음부터 끝까지 부르고, 하나부터 열까지 숫자를 (약간은 틀리게) 세며, 이제 제법 문장을 만들어 낼 수도 있게 됐다. 예컨대 퇴근 후 기쁜 마음에 부둥켜안고 볼에 뽀뽀를 하면 “아빠, 이제 뽀뽀 좀 그만해요!” 주말 아침에 조금 늑장을 부리고 있으면 “아빠, 이제 일어나서 나가요!” 하는 식이다. 어린이집에서도 확실히 말이 빠른 편이라 같은 반 친구들을 어르고 혼낸다고 하니, 나와 아내는 이 아이의 속도에도 뭔가 적응이 안 되는 것이다.

결국 다른 두 속도 사이에서 우리 부부는 양자역학을 처음 접하는 인문대 학부생처럼 혼돈에 빠지고 만다. 첫째 아이는 약간의 상실감이나 좌절감 같은 걸 느끼는 것 같다. 어떤 놀이를 하다가도 동생이 끼어들면 멀찍이 떨어져버린다. 그리고 홀로 동요를 듣거나, 동영상 따위를 틀어주길 (몸짓으로) 요구한다. 둘째는 아랑곳없이 말을 걸고, 블록이나 인형을 들고 혼자 신나 떠든다. 어머니가 말하던 내 어릴 때 모습을 별다를 것 없이 재현하고 있어 쑥스러운 대견함이 마음을 채우지만, 한구석엔 이 속도에 훨씬 뒤처진 언니를 걱정하는 마음이 불쑥 들어선다. 두 마음은 같은 마음일까, 다른 마음일까. 확실한 건 지금은 두 마음이 뒤엉켜 속이 매우 혼잡하다는 사실이다.
혼잡한 마음의 진로는 이미 정해져 있는지도 모른다. 알면서도 잘 못하는 일이다. 그런데도 할 수 있는 일이다. 아이의 소리는 늘 목 언저리에서 약간 막힌 것처럼 느껴진다. 그것을 뚫고 소리를 뱉으면 발음이 약간 뭉개지는 것 같다. 그 뭉그러짐을 이기기 위해 아이는 노력하고 있다. 나는 무슨 노력을 하고 있나? 날마다 자연스럽게 생기는 조바심을 억제하지 못하는 걸 보니, 노력다운 노력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 이제 세상에서 가장 간단한 노력을 해나가리라 다짐해본다. 기다리는 것. 아이의 속도를 기다리는 것. 천천히 여문 사랑이 더 단단할 것임을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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